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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부정공>학생공휘기화묘갈명(學生公諱基和墓碣銘)
學生公諱基和墓碣銘 公諱基和字元中嵋隱其號也趙氏系出淳昌世德詳示累代狀碣故更不架疊焉公英宗甲辰生稟性仁孝才氣超卓事親極志物之養昆季盡友于之篤敎子侄先孝悌而後文藝對宗族序長幼而叙天倫每朔望雖祈寒盛暑必齋戒而謁家廟焉自幼力學能文潜心於性理之學又探究禮經隱淪於山水之間以琴書自娛日與士友唱酬而終老焉事載道誌及靑衿案卒于丙午二月三十日葬於住岩面五山里峨嵋山南麓子坐原配南原梁氏生于辛丑卒于丁酉六月九日墓祔右育一男一女男曰鎭桓女適濟州梁賢圭曾玄不錄古書云忠孝之門出孝子文藝之家出學者是皆名實相符者也來孫東鎰繼家學而宗黨之文士也袖其五代祖考遺事遠訪鳳南齋索銘於不侫不侫無文固辭請意益勤故遂爲之銘 惟公厥績 率性天眞 在家孝友 鄕稱碩士 何以證之 諸書有倫 睠彼南山 有高四尺 公寧其中 愼勿樵牧 銘其來百 過者必式 歲在乙卯暮春節 高靈 申貞浩 謹撰 학생공휘기화묘갈명(學生公諱基和墓碣銘) 공의 휘는 基和요 字는 元中이며 미은(嵋隱)은 그 호이다. 淳昌趙氏인데 세덕(世德)은 누대장갈(累代狀碣)에 상세히 기재되었으므로 가첩(架疊)아니한다. 공은 英宗甲辰生이신데 성품이 仁孝하고 才氣가 초탁(超卓)하여 어버이를 섬기며 뜻과 몸음 기루고 형제간에 우애를 두텁게하며 자질에 효제(孝涕)를 먼저 가르치고 문예(文藝)를 뒤에 하며 종족간에는 長幼의 차서로 天倫을 펴고 매달 삭망에 일찍 일어나 비록 기한성서(祈寒盛暑)라도 목욕재계하고 正衣冠하여 사당에 참알하시었다. 어려서부터 힘써 배워 文藝가 숙달하니 성리학에 잠심하고 예학에 뜻을 두며 山水에 숨어 琴書로 自樂하고 매일 士友로 더불어 소영(嘯咏)하며 餘生을 보내니 文行으로 靑衿案과 道誌에 등재(登載)되었다. 丙午二月三十曰에 별세하여 묘소는 住岩面五山里峨嵋山 남쪽기슭 子坐原이요. 배南原梁氏는 辛丑生이신데 丁酉六月九日에 향년 六十二세로 별세하니 묘소는 부우(祔右)하였다. 一男一女를 두었는데 男은 진환(鎭桓)이요 女는 濟州梁賢圭妻며 内外曾玄은 다쓰지 않는다. 옛 글에 忠孝家門에 孝子나고 學問家에 學者가 난다더니 名實相符한 말이로다. 來孫東謚은 家學을 이어받아 종당의 文士라 先代의 行跡이 오래되면 인몰(湮沒)될까 두려워하여 그 五代祖考遺事를 소매에 넣고 멀리 봉남재(鳳南齋)로 나를 찾아와서 유사(遺事)를 보이며 문사(文嗣)를 아끼지 말고 바로 써 달라고 하였다. 일사(溢辭)는 무선(誣先)이라 그 근성에 감동하여 옷깃을 바로하고 새기되 생각하니 공의 행적은 惟公厥績 천진한 성품에 뿌리 하였다. 率性天眞 집에서는 효우하고 在家孝友 고을에는 향선생이네 鄕稱碩士 무었으로 증거하나 何以證之 모든글이 조리가 있도다. 諸書有倫 돌아보니 저 남산에 睠彼南山 四척높이 봉분이 있어 有高四尺 공이 그 가운데서 잠드셨으니 公寧其中 삼가하여 치지말고 먹이지 말지어다. 愼勿樵牧 새기노니 이후 천추에 銘其來百 지내는자는 반드시 구부리리라. 過者必式 歲在乙卯暮春節 高靈 申貞浩 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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